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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거리에서 본 콘서트라 후기 5000자 컷 될줄알았는데 이런 시발 또 10000자 넘어가네 원래 후기글에 같이 넣으려다가 무드가 안 맞아서 그냥 따로 발행함. 지금 콜플콘샄잨4기공개코첼라제니리사쓰지죠죠스틸볼런티저용6베몬위버스주작사건등 볼거할거 개많은데 콘서트 끝나고 올 스탑이야 지금 졷됏어 나고야홀콘도 알아보고잇어 이미칀련

 

텐콘 vcr? set list? 후기?

이번 콘서트는 육체적인것과 정신적인 것 그리고 이 두가지를 이어주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
텐이 두눈으로 응시하면서 영상이 시작됩니다. 눈을 감고 물속에서 아무것도 걸치지않고 유영하고 있는 그. 마주보는 둘은 같지만 다릅니다. 시퍼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색을 잃어버린 그것은 혼(魂)과 백(魄) 사이의 부유물입니다. 가사상태와 다름없는 그는 뺏긴 것을 되찾기 시작합니다.
1막의 무대들은 육체적인 것을 강조한 특히, 몸짓에 집중한 무대입니다. 노래가 끝날때 의상을 한꺼풀씩 벗겨냅니다. 파충류의 외피, 허물을 연상케하는 자켓을 벗고 동작마다 벌어진 상처처럼 노출을 행합니다. 백( 魄)을 탐색하고 찾는 변신의 과정에서 마침내 무대 시작전 모자를 하나 가져옵니다. 
새파란 남자와 대비되는 그는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거울을 보고 물건을 만져보고 배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 쓰게 됩니다. 웃고 있는 남자아이로 그려진 그림을 보며 혼란스러워하고 방이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검게 칠해져있던 연필자국은 인어 삽화로 변해있고 동화 삽화와 같던 남자아이 그림도 어느새 노래부르는 인어로 바뀌어있습니다. 혼돈끝에 방의 떨림이 멈추고 자신이 인어라는 것을 기억한 그는 다시 한번 물속으로 다이브합니다.
과감한 선언 이후 육체를 얻은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육을 과감하게, 폐부밑을 까뒤집어줘서 보여 줍니다. 살가죽을 벗기면 근육이 비치듯이 쫙 달라붙는 재질의 빨간색 옷은 시뻘건 나신을 연상케하며 그는 좀전보다 과감하고 자극적이며 유혹하는 무대를 보여줍니다.  
과감한 절개 및 노출뒤에는 아픔이 뒤따릅니다. 댄저러스를 통해 선언한 그의 행동은 두가지 폭력을 불러일으킵니다. 외부로부터의 폭력과 나로부터의 폭력. 그는 깊숙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폭력을 행사했고 보는 이들은 예끼치못하게 혹은 의도적으로 그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혼란속에서 반짝임으로 가득한 바다와 푸른남자와 다시 마주하나 이내 영상은 끝납니다. 그의 영혼은 아직 심해에 있기 때문이죠. 유리병안에 박제된 나비가 아직 풀려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핏빛으로 물든 몸을 가리는 빨간코트는 몸을 가려주긴하나 상처를 가릴 순 없습니다. 그래도 그는 노래합니다. 2막은 영혼적인 것을 강조한, 노래에 집중한 무대입니다. 찢어지고 부서질만큼 아픔에 내지르듯이 부르는 Die with a smile은  '나는 이렇게 당신에게 모든걸 보여줘 상처를 받아 끝(죽음)을 의미할지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곡입니다. 노래부르는 자신을 두 스크린에 띄워 마주보는 연출은 상처 준 '너'를 향한 말이기도 하지만 '나'를 향한 말이기도 합니다. 두팔벌려 안을 수 있는건 당신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가능하니까요. Lie with you에서 또한 거짓일지라도 지금 있는 이순간만큼은 함께 하고싶다는 쓸쓸한 고백과 그럼에도 나를 찾아줘, 나의 이름을 불러달라는 call me라는 곡 제목처럼 이름을 불러줌으로서 영혼은 비로소 풀려나 나비가 되어 육체로 날아갑니다.
이름이 가진 의미는 매우 강력하고 이름을 준다는 것은 힘을 부여하는 행위와 같습니다. 체와 영을 찾는 여정에서 항상 이름이 들어갑니다. On Ten처럼 자신이 직접찾거나 call me에서 타자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그들의 유대를 발견해냅니다. 1막에서 On Ten으로 이름을 통해 탐색하여 육체를 찾고 2막에서 call me도 이름을 통해 영혼을 해방합니다. 

쇠창살은 혼과 백이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마지막 장애물입니다. 먼곳을 응시하자 쇠창살이 사라졌고 다시끔 '자신'이 되는 과정에서 나비와 꽃 타투 또한 자유로워집니다. 애초에 혼은 백과 멀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비는 항상 그와 함께 있었고 잊고 있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거울의 왜곡된 시선하에 혼이 사라졌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해방된 그는 더이상 부유물이 아닌 시퍼런 '자신'입니다. 푸른 사나이는 '자신'이었던 것이죠. 배트를 들고 발을 물에 적신채로 물보라를 일으키고 미러볼을 부수고 스프레이를 뿌립니다.나를 비추고 있던 모든 것을 부수고 파괴합니다. 물의 잔상, 마주보는 거울.  고립된 공간에서 자신을 정의내릴 수 있는 유일한, 모순되고 왜곡된 도구를 부수고 다시 재생성하고 제멋대로 조립합니다. 거울에는 stunner와 1001 경쾌한 낙서가 새겨져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한껏 개운한 모습을 그는 위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돌아갑니다. 두 눈을 뜬 채로 자유롭게 오색찬란한 대양을 유영합니다. 자신의 나비뿐만아니라 다른 이들의 나비까지 거두면서.
 완전해진 '나'는 빛나는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는 자신을 잃었을 때도 수면에 비친 별을 보며 갈망하고 원했으며 항상 눈에는 별이 떠있었다. 나르키소스는 별(자신)을 쫓다 익사했지만 별을 사랑하는 그는 결국 별이됐다. 빛나는 존재로서의 stunner. 혼과 백이 만나는 순간 '나'의 reborn 대한 신화를 다시써야할 필요성이 생겼고 '버스데이'와 '워터'는 이에 적합합니다. 신화에서 탄생 설화는 항상 중요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이야기와 장소에 대해 잊지않겠다는 선언.
수조에 갇힌 인어는 바깥으로 나와 환희와 희망이 가득한 축제 사이에서 다시금 바다로 사라진다. 수조(거짓된 장소)에서 부르다가 거짓을 깨닫고 육지로 나오는 노래 워터 - 환희와 희망이 가득한 축제 pmn- 땅을 밟고 서서 바다에 다시 몸을 맡기는 웨이브. 물을 상징하지만 다른 두 노래는 고리로 엮인 삶의 굴레와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죽는다. 

생명과 죽음을 상징하는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고 죽는 이야기. 백만번 산 고양이가 사랑을 알고 영생을 포기한 것처럼 (인어 혹은 인어 고기의 속성 중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영생이란걸 생각하면) 진실된 자신을 위해 죽고 다시 태어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어처럼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는 혼과백이 만나 이름으로 묶어줘야지 존재할 수 있는 것. 혼과 백 하나라도 없으면 '나'는 온전하지못하며 육체가 바스러지고 혼이 떠돌더라도 이 두가지를 붙잡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은 이름.이름을 잊지말고, 이름을 간직하고. 이름을 잊지않는 이상 오랜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나' 돌아올 수 있다. 혹여나 언젠가 실수로라도 이름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여기 있는 관객 한명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길 바라는 마지막 인사말. 첫째날 끝 인사가 'I'm 텐 치타폰 리차이야폰쿨입니다' 이었던 것도 이 때문 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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