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6~7년 전에 봤던 전시 이야기. 어떤 전시가 보고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그냥 기분 전환할 겸 미술관을 찾았고 마침 한국적 요소가 강한 정물화와 탁 트이는 풍경화가 전시되어 있었다 원시적이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잘 보고 간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전시실에 들어가기전까지는... 발걸음을 옮기니 투명 아크릴로 둘러싸인 공간이 나왔고 원룸하나의 크기로 섹션을 나눠놓고 작가가 떡하니 앉아서 그림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가의 주변은 물감으로 점 칠 되어있고 붓이 널려있다 난잡하고 날 것이었다 회화전시장이라는 정돈된 공간에서 갑자기 나타난 작가의 개인적인 공간은 관객으로 하여금 신선함,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무례함 등 그림으로부터 전혀 떠올릴 수 없었던 다양한 감정이 피어나게 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의 주체가 되는 것은 현대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방법이지만 한국적 채색화를 그리는 화가와의 기묘한 조합은 꽤나 인상깊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On Ten 티저를 보자마자 떠올랐던 기억이 바로 이 것이었기 때문ㅋㅋ(청보리밭의 화가로 유명한 이숙자 화백은 천경자 화백의 제자답게 화려한 색깔의 채색화가 주된 전시품이었고 보리밭 색감이 특히나 좋았다 드넓은 바다를 연상케하지만 우울하지않았던)
구성 자체는 흔하다 예술가를 모방하는 연예인이 만든 현대미술. 두 요소의 조합을 케이팝에서 본 적이 있던가하면 글쎄...텐이 선구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아이돌 역사가 30년을 넘어가고 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케이팝의 황금기는 그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자본과 인력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이런 시도를 안했다는게 뭔가ㅋㅋ 이 산업은 다음 단계를 위한 도약보다는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자는 가챠게임으로 전략해버린 듯하고 단순한 접붙이기 식의 티저라도 신선하다고 느낀 것을 보면 정말 끝이 보인다
대중문화의 대척점에 있는 비주류의 문화를 케이팝 티저로 끌고왔다는 점에서 시도부터가 충격이었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를 포장 없이 그대로 전시했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아렸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적당한 시각적 자극과 약간의 모럴리스한 아이돌 티저를 들고 왔다면 이것보다 화제가 됐을 텐데 쉽게쉽게 가는 길을 놔두고 정말로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텐'은 '텐'을 선택했다
슈퍼엠 티저가 직관적이고 표현도 낫지 않았나 싶었는데 아니다 예술인으로서 텐은 어떨까라는 가정으로부터 나온 작업물은 텐이라는 본질을 담은 작업물을 이길 수 없다 가정과 현실은 다르니까. 유명한 작품으로 시작하여(Taki taki, 슈퍼엠 첫 번째 개인 티저)->정적인 본인의 그림(슈퍼엠 정규 개인 티저)->본인이 그림을 그리는 행위(pmn)->본인이 주체가 되는 작업물+관객까지 본인 이 정도면 귀에 대고 소리치는 정도다 나를 봐줘 나에게 집중해줘 다른 사람의 작품을 빌려 대신 말하던 그가 이제 직접 말하고 쓰고 보여줄 수 있다.
케이팝 아이돌로 기대한 모든 것을 잠시 접어두고 먼 미래의,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할 텐을 지금 여기에 꾸밈없이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혹은 과거에 선택이 비틀렸다면 런던의 미술학교를 졸업해서 개인전을 여는 그런 상상속의 모습이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 아이돌로서 수명을 다한 뒤 아니 너무 무례한 표현이고 다른 예술 분야로 지평을 넓힐 때쯤의 어느 날의 상상했던 그의 모습을 첫 번째 솔로앨범으로 가져오다니 지금의 나를 보여준다고 해놓고 또 거짓말을 했네 지금이란 말은 특정한 시점을 포착한 단어이기도 하지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니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기도. 과거가 있기에 지금이 있고 지금이 다음 미래를 만들어가니 잡지에 출사표를 던지며 지금의 텐을 보여주겠다는 말 정말로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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